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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경제, 역사, 산업

사도광산 추도식, 한국은 왜 3년 연속 불참했나?|세계유산이 된 일본 금광에 남겨진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

by infobox0218 2026. 9. 10.

핵심 내용

  • 한국 정부는 2026년 9월 12일 열리는 일본 주관 사도광산 추도식에 3년 연속 불참하기로 했습니다. 핵심 쟁점은 추도사에서 조선인 노동자 동원의 강제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습니다.
  • 사도광산에는 아시아·태평양전쟁기 1,519명 이상의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되며,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과 차별을 겪었습니다.
  • 202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도 일본의 조치에 진전은 있었지만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whole history)'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전략은 아직 충분히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목차

1. 한국은 왜 3년째 추도식에 가지 않을까?

2. 사도광산은 어떤 곳인가?

3. 조선인 1,519명은 왜 사도광산에 갔을까?

4. 그런데 어떻게 세계유산이 되었을까?

5. '전체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6. 2026년 유네스코가 다시 일본에 요구한 것

7. 세계유산은 아름다운 역사만 기억해야 할까?

 

사도광산 추도식, 한국은 왜 3년 연속 불참했나?|세계유산이 된 일본 금광에 남겨진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

1. 한국은 왜 3년째 추도식에 가지 않을까?

2026년 9월 9일 한국 정부는 오는 9월 12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에서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으로 한국은 2024년부터 3년 연속 일본 주관 추도식에 불참하게 됐습니다.

외교부는 일본과 협의를 계속했지만 추도사의 핵심 쟁점에서 합의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 역시 추도사 내용을 둘러싼 한일 간 견해차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왜 '추도사 문구' 하나가 이렇게 중요할까요?

그것은 결국

"누구를 추도하며, 그 사람들이 왜 그곳에서 일해야 했는가?"

 

라는 역사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 韓, 日 사도광산 추도식 3년 연속 불참…"추도사 이견 못 좁혀" (2026.09.09)

 

韓, 日 사도광산 추도식 3년 연속 불참…"추도사 이견 못 좁혀"(종합) | 연합뉴스

(도쿄·서울=연합뉴스) 이도연 특파원 민선희 기자 = 한국 정부가 오는 12일 니가타현 사도시에서 열리는 일본 주관 사도광산 추도식에 3년 연속...

www.yna.co.kr

 

2. 사도광산은 어떤 곳인가?

사도광산(佐渡金山)은 일본 니가타현 서쪽 사도섬에 위치합니다.

17세기 에도시대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금·은 생산지였습니다.

유네스코가 높이 평가한 것도 이 부분입니다.

 

202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대상은

니시미카와 사금산과 아이카와-쓰루시 금은광 등으로,

유네스코는 사도광산이 에도시대(1603~1868)

비기계식 금·은 채굴과 제련 기술, 그리고 그에 따른 광산 운영체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라고 평가해

세계유산 등재 기준 제4호(Criterion iv)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사도광산의 역사는 에도시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896년 미쓰비시가 광산을 인수했고,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광물을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조선인들이 이곳으로 동원됐습니다.

 

[UNESCO] Sado Island Gold Mines

 

Sado Island Gold Mines

The Sado Island Gold Mines is a serial property located on Sado Island, some thirty-five kilometres west of the Niigata Prefecture coast. It is formed of three component parts illustrative of different unmechanised ...

whc.unesco.org

 

[UNESCO] 2026 사도광산 결정문

3. 조선인 1,519명은 왜 사도광산에 갔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사도광산의 조선인 동원은 1939년 2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일본인 광부의 진폐증과 전쟁에 따른 징집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조선인 노동력이 투입됐습니다.

미쓰비시광업 관련 자료에는

1940년 648명, 1941년 280명, 1942년 79명, 1944년 263명, 1945년 251명 등

총 1,519명의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1,519명'은 피해의 최종 확정 숫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도광산 조선인 전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완전한 명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초명부 등 여러 자료를 교차 분석한 연구에서는

조선인 745명의 신원정보가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피해자로 결정한

사도광산 피해자 148명 가운데 45명이 진폐증 피해를 신고했습니다.

 

즉, 사도광산 문제는 단순히

"조선인이 일본 광산에서 일했다"

는 문제가 아닙니다.

  • 어떤 방식으로 동원됐는가,
  •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했는가,
  • 어떤 차별과 피해를 경험했는가

까지 함께 기록해야 전체 역사가 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에 조선인을 광부로 강제동원한 사건.

encykorea.aks.ac.kr

 

[동북아역사재단] 조선인 동원의 배경과 피해 사례

 

동북아역사재단 뉴스레터

 

www.nahf.or.kr

 

4. 그런데 어떻게 세계유산이 되었을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강제동원의 역사가 있는 곳을 유네스코가 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을까?"

 

핵심은 일본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등재 가치의 시간적 범위입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사도광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는

주로 에도시대의 비기계식 금·은 채굴기술과 광산 운영체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유네스코 등재 자체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세계유산적 가치로 인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가 남습니다.

장소의 역사를 특정 시대에서 잘라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광산의 기술적 가치를 에도시대에서 찾더라도

방문객에게 이 장소의 역사를 설명할 때

그 이후 벌어진 일까지 지워도 되는가?

 

한국이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5. '전체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2024년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국은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동을 포함해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일본 역시 관련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한 전시와 추도식 등이 논의됐습니다.

 

하지만 2024년 첫 추도식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행사 명칭과 추도사 내용 등을 둘러싸고 양국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한국 유가족과 정부 관계자가 일본 주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2025년에도 일본 측 추도사가

조선인 노동자 동원의 강제성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국은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 것입니다.

연도 주요 상황
2024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한국 일본 측 추도식 불참
2025 강제성 표현 문제 지속, 한국 다시 불참
2026 추도사 핵심 쟁점 합의 실패, 3년 연속 불참

 

따라서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외교 의전 문제가 아닙니다.

 

'추모'와 '역사적 책임'을 분리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6. 2026년 유네스코가 다시 일본에 요구한 것

2026년 7월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사도광산 문제를 다시 검토했습니다.

결정문 48 COM 7B. 14를 직접 보면

일본이 여러 관리·보존 조치에서 진전을 이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역사 해석과 전시에 대해서는 평가가 달랐습니다.

 

위원회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해석·전시 전략이 완전히 발전된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관련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의해 모든 광산 운영 시기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도록 권고했습니다.

 

일본의 일부 진전을 인정하면서도
'전체 역사'를 충분히 보여주는 해석·전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

 

일본은 관련 이행 상황을 2027년 12월 1일까지 다시 보고해야 합니다.

 

7. 세계유산은 아름다운 역사만 기억해야 할까?

사도광산 문제는 결국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세계유산이란 무엇일까요?"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뛰어난 기술만 보존하는 것일까요?

 

세계유산에는 인류의 찬란한 성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과 학살, 식민지배와 강제노동처럼

인류가 기억해야 할 어두운 역사와 연결된 장소도 있습니다.

 

따라서 산업유산을 보존할 때 중요한 것은

광산시설 → 기술 → 생산량

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일했는가 
→ 어떤 조건에서 일했는가 
→누가 이익을 얻었는가 
→ 어떤 피해가 남았는가

 

까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실 자체뿐 아니라

오늘의 국가와 사회가 과거의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강조하며 무엇을 침묵하는가

 

역시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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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종호, 마리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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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과 군함도는 왜 자꾸 함께 언급될까?

사도광산 논란을 이해하려면 일본의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특히 하시마(端島), 이른바 군함도 논란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사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산업·기술 발전이라는 문화유산적 가치와 식민지 시기 조선인 노동이라는

불편한 역사적 기억이 같은 장소 안에 겹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광산 문제는 단순한 한일 감정싸움으로만 보면 본질을 놓칩니다.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산업 발전의 성취를 기념하면서
그 발전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역사까지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사도광산 논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